머지 않아 우리는 신생아에 대해 그 아이가 우울증, 불안증, 조현증에 걸릴 확률을 말할 수 있게될겁니다. 아이가 난독증일 확률, 비만이 될 확률, 알츠하이머에 걸릴 확률도 알게 되겠지요. 이것이 바람직한 미래일까요?
로버트 플로민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는 “블루프린트”에서 이러한 지식이 우리로 하여금 실제 비만에 걸린 사람이나 우울증에 걸린 이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들 것이라 주장합니다. 또한, 아이들을 더 잘 키우게 될 것이며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 더 알맞은 계획을 세우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그는 또한 우리가 아이를 위해 만드는 좋은 환경, 곧 양육이라 부르는 과정이 평균적으로 아이의 발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쁘게 전합니다. 플로민은 가정에서의 양육이 학교 환경 만큼이나 우리의 성격, 행복, 경제적 성공과 무관하며, 이는 사실상 모든 이가 기회의 평등을 누리게 만들어 준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성격과 특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오직 우리가 물려받은 유전자이며, 유전자는 누구도 조절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지식이 무지와 자기 기만보다 언제나 낫다는 가정 하에서 좋은 소식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신이 아이 옆에서 책을 읽어주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건 아닌지, 값비싼 사립학교에 돈을 낭비하고 있는건 아닌지 알고 싶어할 겁니다. 나는 과학적 결과에 의문을 가질 만한 위치에 있지 않으며, 플로민은 성격의 유전학을 45년 동안 연구해온 사람입니다. 그는 서로 다른 가정에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에 대한 연구와 한 가정내의 입양아와 친자식을 비교하는 연구 분야의 선구자입니다. 수천 명의 대상자와 수십 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플로민과 그의 동료는 유전자와 환경, 곧 본성(nature)과 양육(nurture)이 성격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습니다. 모든 대결에서 유전자는 환경을 이겼습니다.
플로민은 오늘날 진행되는 유전자 혁명이 개인의 삶, 그리고 이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사람들은 유전학이 남용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 중에는 사적인 데이터 수집에 혈안이 되어 있는 디지털 세계의 마왕 페이스북과 구글도 빼놓으면 안되겠지요. 보험 회사 역시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직 극단적인 낙관주의자만이 개인 유전학이 만드는 새로운 세상을 인류가 슬기롭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 믿을 수 있을겁니다. 플로민은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 말합니다. 물론 나는 세상이 그렇게 밝고 아름다운 곳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 게놈이 처음으로 밝혀진 것은 2004년입니다. 이 말은 한 개인의 전체 DNA 를 구성하는 60억 개의 핵산이 처음으로 밝혀졌다는 뜻입니다. 이를 위해 수 백 명의 과학자들과 20억 파운드(약 29억원) 이상의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오늘날 한 개인의 전체 DNA를 분석하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으며, 1천 파운드(약 145만원)도 들지 않습니다. 이런 기술의 발전은 개인의 DNA 가 그의 성격, 생리적 특성, 행동적 특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특정한 유전자 하나가 아니라 수 천 개의 작은 유전자 변화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한 사람 한 사람이 – 일란성 쌍둥이를 제외하고는 – 고유한 성격을 가지게 만들어 주며, 또한 특정한 성격을 가지는 아기를 유전적으로 만들 수 없게 해 줍니다. 이러한 작은 유전자의 변화는 “단일 염기 다형성(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s)”이라 불리며 약자를 따 SNPs, 또는 “스닙(snips)”라 불립니다. 아직 우리는 이러한 SNPs 가 어떻게 우리의 뇌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지 못하지만, 이들 전체에 의해 우리 성격의 약 50%가 결정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50%는 “지속적인 효과가 없는 비체계적이고, 기이하고, 우연적인 사건”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제 과학자들은 특정한 성격과 연관된 SNPs 들을 분석해, 한 사람이 우울증이나 염려증, 조현병, 비만 등에 걸릴 가능성을 나타내는 “다유전자 점수”를 매길 수 있습니다.
한때는 질병으로 생각되었던 이런 특성들이 이제는 한 사람의 유전자가 정규 분포의 한 쪽 극단에 위치하기 때문에 가지게된 특성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다유전자 점수는 자신이 이 정규 분포의 어디 쯤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말해줍니다. 아직은 예측의 정확도가 높지 않습니다. 다유전자 점수는 집단 내 다양성 중 성격의 1%, 사회적 성취의 11%, 지능의 7%, 조현병 가능성의 7%만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표본의 수가 증가할수록 이 수치는 50%에 점점 더 가까워질 것입니다.
“집단 내 다양성”은 매우 중요한 표현입니다. 한 개인의 다유전자 점수는 성격적 특성이나 미래에 그가 이루어 낼 성취를 확률적으로만 예측합니다. 플로민 자신의 다유전자 점수는 그의 조현병 위험도가 상위 85%에 위치한다고 말해주지만 그는 아직 조현병 증상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한편 그의 다유전자 점수는 그의 학문적 성취도가 상위 94%에 위치한다고 말해주며, 이는 그가 런던 킹스 칼리지의 교수라는 사실에서 잘 들어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양육의 효과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됩니다. 전체 집단에 대해 양육의 효과는 평균적으로 거의 없지만, 어쩌면 당신의 아이는 침대 머리맡에서 당신이 읽어주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아이일 수 있습니다. 나는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일은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플로민은 아이가 타고난대로 살아가도록 내버려 둠으로써 그 아이가 스스로 유전적으로 적합한 분야에서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자유방임주의적 교육관을 가진 듯 합니다.
나는 플로민을 심리학자이자 유전학자로는 존중하지만 그의 사회학 지식은 좀 당황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그는 유전학에 대한 반대가 곧 평등한 기회에 대한 반대일 수 있다고 주장하며 “유전율(heritability)은 기회(opportunity)와 능력주의(meritocracy)의 지표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나는 근섬유밀도가 낮기 때문에 절대 단거리주자가 될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얻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난독증 유전자를 가진 이는 내가 책에서 얻는 기쁨을 절대 누리지 못하겠지요. 플로민은 “기회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 말하며, 교육은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곧 유전적인 자기 자신을 찾게 해주는 것”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음악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가난한 국가에서 태어난 특별한 음악적 재능을 가진 아이는 어떻게 자신의 재능을 찾을 수 있을까요? 플로민은 집안 환경은 거의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말하면서, 아이를 방임하고 학대하는 것은 그 아이의 감정적 인지적 발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방임과 학대는 마치 우울증이나 불안증처럼 쉽게 발견됩니다.
플로민의 의견 중 내가 동의하는 것은 “유전학의 지니는 이미 병을 탈출했고, 아무리 우리가 노력한다 하더라도 다시 병 속에 집어넣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나는 플로민의 학문적 성취와 이를 대중적으로 알리고 이 분야가 사회에 미칠 잠재적인 가능성을 논의하려는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나는 그가 유전적으로 어떻게 그렇게 낙관적인 성격으로 태어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합니다. 나의 유전자는 개인 유전학이 가져올 멋진 신세계에 대해 전혀 다른 미래를 예측하게 하는데 말이지요.
(가디언, Steven Mithen)
제공: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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